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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mur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_ 상실









끔 아주 뜬금없는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이름이 명치에 걸려서 울렁울렁 거릴때가 있다.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일수도 있고..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일수도 있고.. 무슨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미간이 찌푸려지는 뭔가 오묘한 고통이다. 고통..? 아프다기보다는...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고 또 물고 결국엔 지금의 나. 나의 상황. 나의 주변. 이렇게 생겨먹은 나의 관한 모든것들에 대한 자책같은걸. 후회같은걸. 그리움 같은걸. 칭칭감고 먹먹한 상태가 된다.


예전에 사용하던 노트를 들여다보다가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분신같았던 절친의 옛 남자의 이름이다. 오빠는 나와도 꽤 가까웠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꽤나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나와 그는 서로 다른 의미로 같은 이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존재들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있었던 그녀 또한 나의 이해와 그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이란건 늘 일인칭 시점으로 멋대로 편집되어버리는거니까. 나에게 오빠는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고 한사람의 관심을 갈망한다는 점에서 동지애적인 애틋함이 들기도 했다. 오빠와 그녀의 끝은 (적어도 그 끝의 시작은) 그녀의 선택인것처럼 보여졌다. 그녀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내 기억은 견디지 못한 건 그녀쪽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마침표를 찍은건 오빠가 먼저였다. 분명한건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나는 그 이후 오빠와는 연락하지 않았다. 오빠와 나의 공유점이 사라졌으니 연락할 이유도 방법도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그토록 집착하던 그녀와 나 또한 소원해졌다. 나는 그녀가 먼저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녀에게는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내가 떠났다고 믿고 있겠구나... 우리는 서로에게 무얼 어찌 어떻게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나는 욕심이 컸고 이기적이었고 겁이 많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오늘 문득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사이에 두고 어줍잖은 연민을 느꼈던 오빠의 이름이 더 선명한건.. 적어도 오빠는 나와 서로 등을 기대고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백속에서 같은 이를 그리워하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다. 뭔가 나와 같은 상실감을 갖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실은 견딜만해 지는거다.


나이가 들면서 얻어지는 만큼 잃어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들어오는 문은 닫히고 자꾸 잃어가기만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런 상실의 시대를.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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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도, 내 의식의 결 켜켜이 절대 그녀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존재에 대한 상실감 또한 지워지지는 않을거 같다. 그녀는 나의 분신이고 나의 가족이고 나의 유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