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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mur

2020년 1월 14일 화요일 _ 날씨 눈

 

 

2009년, 지인들과의 한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그대들은 행복하느냐고.

책에서만 보던 그런 단어가.. 현실의 대화속에서 등장한다는게 신기했다. 내가 처음으로 ‘행복합니까?’ 라고 뜬구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순간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이가 현재의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며.. 몇가지의 이유를 대며 정확히 불.행.하.다.고 말을 했다. ’불행’ 이란 단어를 생전 처음 들어본 것 마냥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얼마나 이질적이고 충격적이었던지.. 기껏 마셨던 술이 홀딱 깨버리는 것만 같았다. 

미치도록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건 아니지만..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순간을 불행이라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불행이라는 단어는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책이나 드라마 속의 인물을 바라보는 타자가 판단하는 어떤 상태 같은거라고 믿었던거 같다. 태어나서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실제로 처음 마주했던 그날, 다른 배경과 내용들은 다 희미해졌지만, 그 순간의 대화만이 뚝 떨어져서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그날,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랬다.

 

2020년, 아주 긴 시간을 뛰어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났다. 긴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오랜친구와 늘 하던듯한 대화를 나누고 늘 그러했던 듯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데… 친구가 마지막 인삿말로 “행복해라” 라고 한다. '잘가라', '또 보자', '잘 살아라' 도 아닌, 행복해라? ‘꼭’ 이라는 부사를 붙였던가..? “꼭 행복해라"(?)

연하장 속 인삿말도 아니고, 헤어진 옛 연인의 결혼소식에 내뱉는 혼잣말도 아니고, 실제로 소리내어 하는 인삿말에 그런 문장이 존재한다는것이.. 새삼 얼마나 생소하던지.. 

불현듯 십년전 지인들과의 술자리 대화가 떠올랐다. 이 친구에게 오늘의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던 예전의 그 누군가처럼 보였던 걸까?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다지만..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모습이었던거 같은데, 도대체 나의 어디가, 나의 무엇이 변한걸까. 불행하다고 말하던 지인의 행복을 안타깝도록 바랬던 십년전의 나는. 지금 이시각, 행복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모든 이에게 괜스레 심통이 난다.